아비투스
나는 대학시절 전공이 사회학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사회복지학과를 가라는 입시컨설턴트의 말에 '복지사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요..' 라고 해서 '아 그럼 사회학과를 써볼래?'라고 하여 사회학과를 쓰게 되었다. 세상물정 모르고 내가 뭘 원하는지 수능을 치고서야 생각해본 한국의 평범한 고 3의 비극이었다. 나는 사회학과에 적응하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는 나름 열심히 사셨지만 나에게 항상 '안정적인 직장'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어린 나의 눈으로 보기에 사회학과 사람들은 열정이 많았지만 밥벌이에는 썩 도움이 안되보였다. (보통 사회학과는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교수들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진보성향을 갖는 편이다.) 사회학 개론 시간에 들었던 것 중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 바로 아비투스다.
아비투스는 어렵게 말하면 특정 집단에서 향유하는 문화와 생활방식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강남 친구들이 외제차와 골프 이야기하는 그것이 강남의 아비투스인 것이다.
아비투스 개념을 만든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인간은 아비투스로 규정지어지는 존재로 보았다. 부르디외는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생활양식을 형성함으로써 상류층과 다른 계층을 끊임없이 '구별짓기'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 왠지 모르게 너무 불편하다
이 책을 보는 내내 많은 사람들이 되게 불편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상류층이나 하류층의 생활방식이나 어떤 것이 더 옳고 그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터부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내가 쟤보단 잘 살아'라고 하지만 그것을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상류층과 하류층의 생활, 사고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속 비교한다.
"하류층과 중산층은 이것(시야를 넓히는 일)을 통찰하는 눈이 없다. 이들은 이름 뒤에 이학사 또는 문학사가 있으면 교육의 최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 사교 클럽 강연회를 보면 상류층이 다양한 분야의 폭넓은 지식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차가 상류층은 아닐 것이므로 많은 독자들이 불편함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불편한 책일 것 같은데도 인문 분야의 베스트셀러라는 점이 사실 좀 재미있기는 하다. 소확행을 외치는 2030 일지라도 여전히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고 싶은 이들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의미있는 이유
이 책이 불편하지만 나는 이 책이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자본을 7가지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심리자본(상상력, 통찰력), 문화자본(교양수준), 지식자본(전문지식), 경제자본(자산), 신체자본(건강한 몸), 언어자본(세련된 언어), 사회자본(네트워크)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경제자본, 즉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들의 계층이 결정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졸부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이유는 졸부라는 어감이 그에 맞는 교양수준이나 전문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7가지 자본을 고루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경제자본 이외에도 무형의 자본인 언어자본, 신체자본을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일상생활에서 말을 할 때 선택하는 어휘나 표현인 언어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어휘는 말하는 사람의 가치를 높이거나 떨어뜨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을 가려서 한다. 말을 가려서 한다는 관용적표현은 언어 사용에서 사회적 지위가 드러난다는 뜻이다. 부르디외는 말하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언어다라고 말했다. 언어는 맥락에서 일반 대중이 생각 없이 쏟아내는 말과 상류층의 고도로 검열된 언어가 대조된다."
최근 들어서 건강한 몸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가 더 높은 것처럼 신체자본의 중요성 또한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건강한 생활습관을 위한 투자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견뎌낸 사람 만이 생애의 모든 순간에 도움이 되는 신체자본을 얻는다. 건강한 신체는 보너스로 지위향상을 가져온다. 건강한 신체가 개선과 사회적 성공을 외부에 알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사회자본(네트워크)가 진짜 중요하다고 느낀다. 아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내가 볼 수 있는 시야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정말 중요하므로 현재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유형을 바꿔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책을 내가 비판하는 이유
하지만 이 책을 비판하고 싶은 점은 통계적으로 근거가 부족한 주장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팩트풀니스>라는 책이 있다.(과거 포스팅은 아래에) 이 책은 인간이 얼마나 데이터를 무시하고 편견에 근거하여 말하는 지를 검증하는 책이다. 인간의 뇌는 게을러서 이분법적인 판단을 좋아한다. 선진국은 왠지 좋을 것 같고 개발도상국은 왠지 별로 일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판단은 사실관계를 흐리곤 한다. 예를 들어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는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유럽(-7%)이며, 이러한 상황에서도 가장 선방한 국가는 오히려 개발도상국인 중국으로 이번 분기 오히려 작년 분기보다 3.2% 성장했다.
"평범한 이들은 좋은 성적과 졸업장으로 노력하는 자세를 익히고 성과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는 법을 배운다. ... 사회 최상층의 아비투스는 당연히 다르다. 예를 들어 권력 위치에 있는 부모는 대개 학교와 성적에 관대하다."
이런 주장을 하는 건 좋다. 다만 이 책은 너무 근거가 없다. 그러니 납득이 잘 안 된다. 오히려 사회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바라보는 무지가 너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원래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단순하고 단정적으로 말하며, 잘 아는 사람일 수록 입체적이고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이 7가지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면 앞으로 인생을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1. 심리자본 (통찰력, 상상력)
2. 문화자본 (교양수준)
3. 지식자본 (전문지식)
4. 경제자본 (자산)
5. 신체자본 (건강한 몸)
6. 언어자본 (세련된 언어)
7. 사회자본 (네트워크)
# 아비투스
# 인간의품격을결정하는 7가지자본
# 피에르부르디외
# 구별짓기
# 심리자본, 문화자본, 지식자본, 경제자본, 신체자본, 언어자본, 사회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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