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가 책을 선물해 주었다. 남미를 여행할 때 내가 알던 한국사람들 중에 여행 중에도 책을 읽는 사람을 딱 두 명 보았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이 친구였다. 이 친구는 여행 중에도 책을 읽을 만큼 책을 좋아했는데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사는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라는 책을 선물해주었다.
철학서는 대표적으로 베스트 셀러와는 거리가 먼 장르인데 확실히 요즘에 '좀 더 와닿는 철학'으로 글을 잘 쓰는 분들도 많아서 철학 관련된 서적들이 베스트 셀러로 올라오게 되었다. 특히 니체 같은 철학자는 되게 난해한 이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쉽게 풀어서 와닿는 책으로 잘 쓴 책이다.
기억나는 부분을 요약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1. 편안함만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오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이 퇴사하거나 일을 안 하면 행복할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니체는 편안함을 거부하고 어려운 것에 도전하고 성취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건 조던 피터슨의 <질서 너머>와도 비슷한 맥락인데 여기에서도 사람은 책임감을 다해서 어떤 역할을 맡고 그 역할을 다할 때 사람은 행복함을 느낀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인간이 이렇게 무엇인가 위대한 것을 성취하면서 자신이 고양되었다고 느끼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과 싸우면서 스스로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일함을 추구하려는 자기의 성향과 투쟁하면서 자신에 대해서 승리를 거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극복하려 하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 부딪히는 모든 곤경을 오히려 그것과의 대결을 통해서 자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기회로 여기면서 환영합니다.
2. 의미를 찾지 않을 때 의미있는 삶이 된다.
이건 철학서적 치고는 꽤 신선한 내용이기는 한데 오히려 의미를 찾지 않을 때 의미있는 삶이 된다는 내용이다. 대부분 철학에서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찰하고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철학교수가 의미를 찾지 않을 때 의미있는 삶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 흥미롭다.
니체는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 인생을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로 여기고 그것을 즐기는 삶을 오히려 '더 의미있는 삶'이라고 보았다. 기쁨만을 누리려는 것이 아니고 기쁨과 슬픔이 반복되는 순간순간을 즐길 수 있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는 것 같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로 여겨지는 사람은 이 놀이를 계속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그저 삶이라는 놀이에 빠져서 그것을 즐길 뿐이지요. 우리가 삶의 의미를 묻게되는 것은 삶이 더 이상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때입니다. 그 때 우리는 삶을 무거운 짐으로 느끼면서 왜 이 짐을 짋어져야 하지? 라고 묻게 되는 것입니다.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신은 어떤 인격적인 신이 아니라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세계 자체를 가리킵니다. 니체가 초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이렇게 파괴와 창조,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슬픔이 반복되는 이 세계를 웃으면서 긍정하는 자이고 춤추는 디오니소스 처럼 너털웃음을 떠뜨리면서 이러한 세계의 한가운데에서 환희에 차 춤추는 자입니다.
3. 너만의 꽃을 피워라.
니체는 종교나 이념의 독단에 빠지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의 힘을 역경과 고난을 해치고 나아가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다. '초인'이라는 개념은 그가 바랐던 인간상이었다. 니체는 복잡한 말로 자신의 사상을 남겼지만 니체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그대 자신이 되어라 (Be yourself)'인 것 같다.
니체는 ‘그대 자신이 되어라’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격과 적성 그리고 환경 등을 잘 고려하면서 그것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는 주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항상 남의 시선과 평가에 신경을 쓰고 남이 무시하지 않을까 걱정하니까요.
우리의 내면에는 끊임없이 자신을 고양시키고 강화시키고 싶어 하는 의지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의지는 우리가 피상적인 삶에 자족해 있을 때 병에 걸리게 한다든지 아니면 지금의 삶의 방식에 대해 권태나 허무감에 사로잡히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라는 신호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니체는 안일함을 거부하고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는 인간을 아름답게 보았다. 생각해보면 당시의 철학은 니체의 사상을 받아줄 만큼의 시대가 아니었던 듯 싶다. 그래서 니체도 자신이 활동하던 시기보다 사후에 더 주목을 받았다. 어찌보면 개인의 발전과 진보를 이야기했으니 당시의 개인주의자는 아니었을지 생각해본다.
내가 고등학교 때 서점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읽어본 적 있다. 당최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를 못해서 그때는 내가 너무 철학을 이해하기엔 너무 머리가 나쁜걸까?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책이란게 똑같은 텍스트로 존재하면서도 나이를 먹고 읽으면 또 다르게 읽힐 때가 있다. 니체가 바로 그런 것 같다. 고등학교 때와 비교하면 그 동안 많은 경험과 역경이 있었고 그것을 발판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사는 게 힘들 때 이 책을 한 번 쯤 펴보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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