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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블라블라

위플래쉬 : 예술에 선악이 존재할까?

by thomasito 2022.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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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모호함에 대하여

 얼마 전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라는 책을 보았다. 시종 일관 어두침침하고 음울한 이 소설은 전후 일본사람들의 정서를 잘 그리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서전이라고 봐도 무방한 이 책은 사실 왜 명작인지 아직도 나는 잘은 모르겠다. 주인공인 요조는 MBTI로 치면 INFP 같은 사람이라서 사실은 사람들과 대화도 별로 하고 싶지만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 웃으면서 이야기하며 살아간다. 대부분 술과 약물에 찌들어 살아서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보내지고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 인간실격되었다고 느낀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책을 덮고 매우 씁쓸한 기분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이 선악에 대해서 생각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예의를 차리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생각해본다면, 그래도 내면은 착하고 순수한 주인공인 요조는 '선한 사람'일까? 아니면 무책임한 결혼과 약물에 찌든 '나쁜 사람'일까?

 

 어쨌든 나는 이렇게 선악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책들을 좋아한다.

 

위플래쉬 (whiplash) : 채찍질

 영화 속 앤드류는 드러머를 지향하는 학생이다. 앤드류는 무엇보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고 싶다는 강력한 내적 열망을 가진 학생이다. 어느 날 앤드류는 학교 최고의 밴드를 이끌고 있는 플레처 교수의 눈에 들게 되어 스튜디오 밴드에 발탁된다. 자신이 기존에 속했던 밴드와 달리 이 밴드는 지휘자인 플레처 교수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의해 돌아가는 재즈 밴드였다. 수준은 월등히 높았지만 플레처 교수는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 연주자들에게 인신 공격을 서슴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메인 연주자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사람이었다. (현대 한국어로 이해를 돕다면 꼰대(!)이다)

 

 그런 플레처 교수의 영향을 받으며 앤드류는 무조건 최고의 드러머가 되어야 한다는 내적 열망이 더 커지게 된다. 주변의 인간관계도 무시하고, 자신이 좋아해서 만나던 여자친구도 정리하면서 앤드류는 그야말로 드럼에 미쳐가고 있었다. 앤드류의 아버지는 드럼이 아니라도 다른 길이 많으니까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런 것들이 앤드류의 내적 열망을 막지는 못했다. 

 

한계를 뛰어넘어 Caravan 을 연주하다

 스포 방지를 위해 결말만 이야기하자면 마지막 장면에서 앤드류는 최고의 연주를 발휘한다. 마지막 음악은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듀크 앨링턴과 후안 티졸이 연주한 Caravan 이라는 노래이다. 낙타와 함께 사막을 건너는 아라비아 대상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음악은 멜로디도 좀 이국적이지만, 드럼이 메인으로 나선다는 것이 특징이다.

위플래시에서 연주하는 Caravan

 

 결국 플레처 교수는 자신이 열심히 쪼아서 만든 앤드류의 연주를 보고 마지막에 감동을 받는다. 앤드류도 플레처가 쪼았던 것을 다 잊어버렸는지(?) 자신의 드러머 연주에 깊이 몰입하여 최고의 화합을 이루어 낸다. 결국 플레처 교수는 극한에 몰아넣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만이 재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본인의 철학으로 한 명의 훌륭한 연주자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어쨌든 영화 마지막에 최고의 Caravan 연주를 듣게 된다.

 

마지막 장면 Caravan

 

예술에 선악이 존재할까?

 나는 80년대 생이기 때문에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는 체벌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1학년 때 담임 선생은 모의고사로 등수가 떨어진 학생들을 때렸다. 그리고 우열반으로 학생들을 나누고, 우등반의 경우 학업 성적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하여 자습실 좌석을 배정해주었다. 생각해보면 채찍질이 있었던 시대였다. 물론 그런 채찍질이 있었기 때문에 대학교도 하고 취업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런 체벌이 필요했을까? 라고 가끔 생각이 든다.

 

 물론 공부와 예술을 비교하기는 좀 무리가 있다. 예술의 최고의 경지에 오른 단 한사람만 스타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도록 연주자를 극한으로 몰아 붙이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남는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들었던 의문처럼, 굳이 극한으로 몰아 붙이지 않아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예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최고의 경지에 이른 음악적인 화합을 느낄 수 있다면 과정이 비인간적인 방법이라도 괜찮은 것일까? 

 

 그렇다면 플레처 교수는 나쁜 선생일까? 좋은 선생일까?

이랬던 형이
이렇게 된다!

이런 선악에 대한 물음표를 남겨주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가 정말 좋았다.

 

재즈만 들어도 좋은 영화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재즈를 영화 내내 들을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았다. Caravan 이라는 음악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듀크 엘링턴이 함께 했던 곡인지 알고 나서는 다시금 보게 되었다. 사실 재즈라는 음악에서 드럼은 트럼펙, 트롬본이나 피아노만큼 주목받지 못하기는 하는데, 드러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드러머이자 손가락 안에 꼽게 좋아하는 아트 블래키의 노래를 남겨놓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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