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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호주 워홀(Australia)

[호주 3편] 한인잡 그리고 오지잡

by thomasito 2021.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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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불 한인잡을 구하다

  그렇게 캔버라로 돌아왔다. 물론 레퍼런스가 있다고 잡이 바로 구해지지는 않았다. 나는 방식을 바꿔서 직접 호텔들을 돌아다니면서 리셉션에 내 레주메와 레퍼런스를 전달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말해주기를 하우스키핑 매니저들이 빈 자리가 생겼을 때 책상에 쌓인 레주메에서 전화를 해서 사람을 구인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인터넷 구인 사이트도 정말 열심히 뒤지며 일주일을 보냈으나,

 

역시나 캔버라에서도 잡이 구해지지 않았다.

 

 당시 나는 돈이 부족해서 한국인들이 있는 쉐어하우스에 들어갔다. 한국인 가족들이 살았고 남는 방 3개는 다른 한국인들에게 쉐어를 돌렸다. 

한인 쉐어하우스 그래도 참 좋았다.
취사병이었던 룸메 사이먼이 가끔 요리도 해줬다.

어느 날 다른 한국인이 왔는데 그 분이 영어를 정말 못하는데 한인잡을 구해서 바로 일을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랑 같은 방을 썼는데 그 분이 첫 날부터 일 못하겠다고 그만 두겠다고 해서 그러면 나를 대신 말해달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그 분은 둘째날 싸우고 일을 그만두느라 내 이야기를 해주지 못했다. 그곳은 캔버라에 있는 Hellenic Club 이라는 우리나라말로 치면 카지노도 있고 스포츠도 보면서 밥도 먹고 하는 복합문화공간 같은 곳이었다.

 

가서 나를 써달라고 말하자!

 

 헬레닉 클럽에 직접 가서 청소하는 담당자를 불러달라고 했다. 보니까 어떤 한국사람이 나와서 나 여기 누가 그만둔지 알고있고 여기서 일하고 싶으니까 나 좀 쓰도록 매니저한테 잘 이야기해달라고 이렇게 말했고, 다음날 바로 출근하게 되었다. 시급은 캐시로 15불이었다.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등등이 지원이 없음)

 

돈 좀 아끼겠다고 항상 걸어다녔다.

 

한인잡을 탈출하고 22불 오지잡으로

  한인잡의 운영방식은 이러했다. 한국인 슈퍼바이저가 호주인 사장에게 얼마를 주면 내가 알아서 애들을 데리고 다 해결하겠다 이렇게 말한다. 호주인 사장입장에서도 건강보험, 국민연금 넣어줄 필요도 없고 호주애들보다 인건비도 싸니까 이 딜을 수용한다. 그러면 한국인 슈퍼바이저는 한국인들을 구해서 청소를 시킨다. 보통 시간당 15불 정도를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 슈퍼바이저들이 모두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 나름 먹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난 호주사람들하고 일하고 싶었고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었다.

 

레주메를 돌렸던 곳에서 연락이 왔다. 호주국립대학교(ANU) 안에 있는 Burgmann College 라는 기숙사에서 하우스키핑을 하는 포지션이었다. 다행히 스티브(매니저)가 좋게 봐줘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들어가고 보니 대부분 ANU 대학원생들이어서 다들 영어도 잘했다. 기본급도 시급이 22불이었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일하면 30불, 40불까지도 챙겨줬다. 아무래도 영리조직이 아니고 대학교다 보니까 분위기가 되게 좋았다.

버먼 컬리지 내부
같이 일하던 친구들

 

 가장 좋았던 게 점심을 챙겨줬다는 점이었다. 학생들이 식사하는 공간에서 같이 밥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타지에서 맨날 혼자 밥을 챙겨먹어야 하니까 누군가가 챙겨주는 식사가 정말 소중했다. 

 

나에게도 외국인 친구가 생기다!

  버먼 컬리지에서 일하는 것도 좋았지만 거기서 만나는 친구들도 너무 좋았다. 영국에서 온 친구들도 있었지만 생전 처음보는 나라인 미얀마, 부탄, 솔로몬 제도, 에티오피아, 카메룬 등등에서 온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특히 미얀마 형인 티와 부탄 누나였던 디첸과 도지는 호주에서 생활하는 내내 나를 친동생처럼 정말 잘 챙겨주었다. 어쩌면 아주 단순할 수 있었던 내 호주 생활을 다채롭게 만들어준 친구들이었다. 

 

 한국에서만 살아온 내가 내 세계를 확장하는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
나중에 친하게 지내서 같이 바다도 놀러갔다.
피쉬앤칩스를 정말 무식하게 판다 ㅎㅎ

 

한인잡에서 만난 좋은 한국분들도 많이 있었다.

나의 룸메였던 형은 절대로 여기서 돈 펑펑 쓰지 말고 목표의식을 가지고 지내라고 말해주었고,

나중에 몇 천만원을 한국으로 들고가서 어머니께 드린 존경심이 드는 형님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면 다른 세계로 도전하는 모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주에서 레주메를 돌려서 얻은 잡, 그리고 거기서 얻은 내 친구들은

인생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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