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현 선수가 논어덕질에 입문시켜주다
최근 현대건설 이다현 선수가 인터뷰 중 논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있어서 논어를 읽게 되었다. (양효진 선수가 원조 논어 팬이라고 한다. ㅋㅋㅋ) 프로배구 선수로서 멘탈이 흔들릴 때도 많은데 논어의 구절들을 곱씹으면서 좋은 경기력을 유지해나가는 것 같다.
어떤 논어를 고를까?
사실 논어 읽기는 과거에도 시도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기존 논어 해석본은 읽다가 포기했는데 그 이유는 한국말은 한국말인데 도대체 마음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논어에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직역하면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따르는 사람이므로 외롭지 않다.'라는 뜻이다. 대충 무슨 말인지를 알겠는데 '덕(德)'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 좀 와닿지가 않는다. 그리고 공자시대에 덕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덕이라는 의미는 분명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물같은 이 책을 찾게 됐다. 제목은 '군자를 버린 논어'이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다름 아닌 '현대적 해석' 때문이다.
여전히 중국 춘추시대 지명들과 수많은 제자들이 등장해서 이해가 어려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과거 읽던 논어보다는 훨씬 이해가 잘 된다. 예를 들면 부모님에 대한 효도에 관한 내용 중 이런 부분이 있다. 논어 이인 18장의 내용이다.
기존 대부분의 해석은 이렇다.
子曰, 事父母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자왈, 사부모기간, 견지부종, 우경불위, 노이불원.
(기존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를 섬길 때에는 (부모님의 잘못이 있을 때) 은밀히 드러내지 않고 충고를 드려야 한다. 부모님이 따르지 않을 듯이 보일 때에는 더욱 공경하며 섬기고 거스르지 말며, 수고롭더라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군자를 버린 논어의 해석은 아래와 같다.
(현대 해석)
공자가 말했다. 이번엔 부모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말해 볼게요. 부모님이 잘 못하는 것을 보게 되잖아요. 그럼 돌직구 날리지 말고 돌리고 돌려서 감정 상하지 않게 부드럽게 일러 드려야 해요. 그렇게 말씀 드렸는데도 부모님이 내 말을 따라서 고치지 않으시잖아요? 그래도 또 공경 스럽게 대해야 하고 엇나가면 안되요. 물론 피곤하죠. 그래도 원 망하면 안되는 거예요.
참고로 덕불고 필유린도 이렇게 해석했다.
공자가 말했다. 내면이 바르고 단단하게 잘 가꿔진 사람은 외롭지 않아요. 반드시 팬이 있는 법이니까요.
논어시대나 지금시대나 사람 사는 건 똑같다
공자는 당대에 많은 제자를 거느리던 교육자이자 사상가였지만 공직에서 빛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관직을 하던 노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들을 떠돌았지만 중요한 자리는 얻지 못했다. 오히려 정치인이 되지 않아서 험한 꼴을 안봐서 훌륭한 학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기원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굉장히 다를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부분을 알려주는 데에 있어서는 굉장히 유사하다.
사실 논어에 별 얘기가 없다. 다 아는 이야기다.
공자가 가장 아꼈던 제자 안연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제자 안연의 마음가짐과 같이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은 이렇다. 약간 똑똑한 사람은 상대방 앞에서 자신의 똑똑함을 드러내지만 진짜 똑똑한 사람은 남들에게 배우면서 동시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똑똑하다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태백 8-5
증자가 말했다. 능력이 있으면서 능력이 없는 이에게 배울 줄 알고, 많이 알고 있으면서 적게 알고 있는 사람에게 배울 줄 알고, 가지고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고 꽉 차 있으면서도 텅빈 것 같으며, 누가 시비를 걸어도 맞대응하지 않는 자세 옛날에 나의 벗 중에서 이런 자세를 줄곧 지녔던 사람이 있었지.
사람을 편견없이 보아야 한다는 부분도 굉장히 와닿는 부분이다.
위령공 15-27
공자가 말했다. 여기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 싫어하니까 나도 그 사람을 싫어해도 될까요? 아니죠. 그 사람을 직접 살펴보고 서 판단해야 합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평판이 그렇다면 나도 무작정 여론을 따라 그 사람을 좋아해도 될까요? 아니죠. 마찬가지로 평판이 그러거나 말거나 반드시 직접 살펴보고 서 판단해야 합니다.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말자라고 이다현 선수가 말했던 부분.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옹야 6-10
염유가 말했다. 스승님이 제시하신 길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닌데 다만 의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좀 벅차요. 공자가 그 말이 핑계일 뿐 임을 바로 지적하였다. 무슨 힘이 부족한 사람도 길을 걷긴해. 길을 걷다가 중간에 그만두게 될 뿐이지. 지금 자네는 걸음을 떼지도 않고 지레 선부터 긋고 본 것이네.
이렇게 한 구절씩 보면 사실 특이한 내용이 별로 없다. 근데 그게 논어의 매력이다. 2~3천년 전에도 사람들은 똑같은 고민을 했었고 똑같은 결론을 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인생을 잘 사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당연하게 잘사는 방법도 때때로 알았다가도 잃어버리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당연한 내용을 다시 곱씹어 보려고 논어를 읽는다고 생각한다.
이번 달 동양고전에 매력에 빠지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역자님 이리 좋은 책을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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